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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기 전에, 꼭 여행을 하고 싶었다.

두학번 위 선배들의 영향이 컸다.
경우형, 세은누나. 
두학번 위 선배들은 새내기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에게 많은 모범(오랫만에 쓰는 단어네ㅎㅎ)을 보여준다. 경우형이 '돈 빌려서라도 여행갔다와라'라고 긁은게 좀 컸다.

긴 여행을 구상한 것은 지난 겨울부터였던 것 같다.
전역 후에 제대로 휴식을 했다는 느낌을 받은 때가 별로 없었다.
학기중엔 전공서적, 학점과 사이좋게 친구로 지내지 못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방학 때에도 아르바이트에 계절학기에 토익공부(제일 후회된다)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쉴 틈이 없었다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쳇바퀴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쉬면 안되'
'열심히 열심히'
지금 돌이켜 보면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이지 지난 봄 학기는 심신이 힘든 학기였다.
매일 밤을 새고, 워크스테이션과 씨름하고, 논문과 씨름했다.

빡세게 사는 것을 내가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정하는 마음이 컸고, 매사가 심드렁 심드렁 했다.


그래, 휴식이 필요하구나.

휴식. 休息

각종 '해야할 일'들 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내가 가고픈 곳을 돌아다니고 바다냄새, 풀냄새, 산냄새, 비냄새를 맡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채우고 싶었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가 날 좀 안찾았으면 싶었다.
쓸데없는 말들은 하지 않고, 
여행지에서 처음만나는 사람들과 부담없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좋은것 보면서, 맛난 음식 먹으면서, 걸으면서
지나온 나의 삶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계획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인도에 가고팠지만, 여차저차 이리저리 해서 가지 못하고 
우리나라 이지만 나에겐 미지의 땅인 전라도 도보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도보여행!
군대있는동안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단어다. 
한비야씨의 책을 읽으며 '그래! 나도 해보는거야!'라며 다짐을 했건만, 지금까지 미뤄왔다. 

그래서 도보여행을 떠났다.

왠걸.
여행 첫째날과 둘째날, 전라도 지역은 폭염주의보였다.
한 이틀 정도를 계속 걸으니 몸은 녹초가 되었고 
걸으면서 깊이 사색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머릿속엔 원초적인 생각들 뿐이었다.
'어디서 밥먹지?'
'가방은 왜케 무거운거야? 코펠은 내일 당장 소포로 보내야겠다.'
'여행 왔으면 멋진곳이라도 구경해야 하는데 이거, 차들 뿐이구만.'
'아~ 더워'
'물을 사먹을까 가게에 들어가서 한통 얻어마실까'
'잠은 어디서 잘까? 깔끔한 찜질방이 근처에 있으려나?'
'윽, 화장실이 어디지?'
...


이틀만에 계획을 바꿨다.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기로.

지나고 나니 여행은 이런 맛인 것 같다.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아도 좋다.
계획대로 되어도 좋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우리나라 강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
귀로 풀벌레 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듣는다.
산들바람이 다리털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낀다.
팔에 내리쬐는 햇빛을 느낀다.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맛깔진 남도 음식을 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맛난 음식을 싼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정말 정말 감사하는 맘음이 생겼다.)

처음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나의 여행이 잘못된 건가 고민되었지만.
아무렴 어때, 내 여행인걸. 

처음 이틀은 완전하게 주어진 자유에 어색했지만,
두렵고도 설레는 나의 여행이 기대되고 설레고 가슴뛰었다.

여행이 끝난 지금.
제대로 된 휴식이 가져다 주는 행복감, 편안함,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의지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고 있다.

예전엔 왜 몰랐을까.
왜 여행이 가져다 주는 수많은 장점을 몰랐을까.

발길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떠돌아 다닌 나의 소중한 3주.

블로그에 소중히 간직하려고 한다.

기간 : 2009년 8월 6일 금요일 부터 8월 30일 일요일
장소 : 천안, 전주, 남원, 담양, 광주, 목포, 제주도 올레길, 완도, 보성, 여수 지리산길, 통영, 김해, 부산, 단양
비용 : 평균 하루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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