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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세훈님의 스포츠 칼럼

http://sports.media.daum.net/column/ksh/wkn/view.html?gid=12435&newsid=20121219203340991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참 훌륭한 감독이다. 아직 감독으로 완성됐다고 보기에는 다소 이른 49세다. 그래도 그는 그 동안 참으로 많은 걸 이뤘다. 우승도 많이 했고 플레이오프는 밥 먹 듯 올라갔다. 무엇보다 16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감독 일을 해온 유일한 감독이다. 기존 구단은 재계약을 원했고 다른 구단은 호시탐탐 기회만 엿봤다. 유 감독은 과연 어떤 리더일까. 왜 선수들이 유 감독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무한 신뢰를 보낼까. 왜 유 감독은 많은 프로팀으로부터 데려가고 싶은 감독 0순위로 꼽힐까. 유 감독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 등을 살펴보면 그가 왜 훌륭한 지도자인지 알 수 있다.

■ 20명과 소주 한잔씩=스타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건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모든 게 자기 위주로 이뤄져온 걸 감독이 돼서도 그대로 원한다. 그래서 스타 출신 감독들은 배우고 양보하고 배려하고 가르치기보다 거만하고 무게를 잡고 자기만 알고 가르침 없이 요구만 하기 일쑤다. 그런데 유 감독은 그렇지 않다. 유 감독은 모두에게서 배우려고 한다. 몇 해 전 모비스 홈경기가 끝난 뒤 이어진 회식자리였다. 취재기자, 카메라기자, 아르바이트생, 구단 직원 등 20여명이 모였다. 물론 유감독도 왔다. 2시간 식사자리가 이어지다가 끝날 무렵이었다. 그 때 유 감독은 소주잔을 들고 20명을 한명씩 만났다. 한사람씩 한잔씩 주고받으면서 2분 동안 그 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소주 20잔, 그리고 40분. 그것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유 감독의 자세였다. 감독들은 보통 취재기자들에게는 잘 하려고 애쓰지만 카메라 기자는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카메라 기자를 보조하는 아르바이트들은 안중에도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 감독은 달랐다. 유 감독은 취재기자든, 카메라 기자든, 아르바이트생이든 똑같이 소주 한잔에 2분씩을 할애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남의 말은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많은 걸 배우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유 감독 지론이다.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배우려고 하는 겸손한 자세가 지금 유재학 감독을 만들었다.

■ 연세대 출신 선수?=유 감독은 연세대 출신이다. 그러나 지금 모비스에는 연세대 출신은 딱 한명 뿐이다. 이번 시즌 신인 모용훈이 그렇다. 그런데 그도 드래프트 2라운드 8순위다. 그 밖의 모비스 선수들은 초당대, 명지대, 한양대, 경희대, 동국대, 단국대, 중앙대, 건국대, 상명대 등 다양하다. 유 감독 머리에는 학연이라는 게 없다는 의미다. 유 감독은 백지상태에서 선수를 뽑는다. 발전 가능성만 있으면 될 뿐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그렇게 뽑은 선수들에게 유 감독은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킨다. 그러면서 훈련은 세밀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팀 전술에는 빈틈이 없고 개인 전술에도 소홀함이 없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이겨낸 선수들에게는 공평한 기회를 주고 계속 그렇게 잘 하면 중용된다. 공평하면서도 투명한 선수단 운영. 선수들이 불만이 있을 리 만무다. 열심히 노력하면 기회를 주는 감독을 왜 비난하겠나. 모비스에는 대학 시절에는 큰 빛을 못 봤지만 프로에 와서 대성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것도 물론 유감독이 치밀하게 짠 시나리오다.



■ 모비스 시계는 10분 빠르다=유 감독은 모든 걸 솔선수범한다. 약속 시간부터 그렇다. 오후 3시 훈련이면 유 감독은 최소한 10분 전에 나온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은 그보다 이른 15분전에 모인다. 2시 출발이라고 고지하면 1시50분이면 전원이 집합한다. 3시 훈련이라고 하면 선수들은 2시50분이면 코트에 나와 몸을 푼다. 모비스 시간은 10분을 빨리 하고 그 시발점이 바로 유감독이다.

■ 감독도 맹훈련 중=유 감독 체중은 78kg이다. 선수시절보다는 약간 쪘지만 키 180cm에 49세 나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다. 그건 매일 거르지 않고 1시간 이상 뛰기 때문이다. 보통 감독이라면 배가 나오고 살이 붙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 감독은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몸 관리가 철저하다. 유 감독은 "나부터 열심히 운동해야 내 말발이 선수들에게 먹힌다"면서 "운동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설렁설렁 훈련하지 않는다. 기자와 구단 직원으로 15년 동안 유감독과 함께 하고 있는 이동훈 사무국장은 "개인 훈련을 빼먹는 걸 거의 보지 못했고 지금도 러닝 머신을 달리면 죽기 살기로 뛸 정도"라고 말한다. 감독이 슬림한 몸매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으니 선수들이 따라가는 건 당연하다. 그건 운동뿐만 아니라 생활도 마찬가지다. 유감독은 아침 식사를 선수들과 함께 먹는 걸 거른 적이 한 번도 없고 훈련에 불참한 적은, 공식 행사 등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없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유 감독. 그런 감독 아래에서 선수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따라하기다. 그게 모비스에는 부상 선수가 적고 부상을 당해도 크게 다치지 않고 다쳐도 금방 회복하는 이유다. 건강한 모비스 구단의 시발점은 건강한 유 감독이다.

■ 성적? NO. 선수가 최우선=지난 10월 시즌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 행사에서였다. 10개 구단 감독과 베스트 5가 나와서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다. 모비스 차례가 되자 유 감독도 양동근 등 선수들과 함께 앞으로 다갔다. 사회자가 물었다. 이번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 때 유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선수들이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이번 시즌을 끝내는 겁니다." 물론 유감독도 우승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건 선수들을 챙긴 이후였다. 다른 감독들은 대부분 "6강에 드는 게 기본적인 목표다" "운이 따르면 우승까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했다. 성적보다 선수를 먼저 챙기는 감독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유감독의 포부는 특별했고 그걸 듣은 양동근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디펜스, 리바운드=모비스 훈련장 벽에는 영어로 쓰여진 큼지막한 단어 두 개가 있다. 그건 Defence와 Rebound다. 유 감독이 농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게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나는 문구다. 수비와 리바운드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궂은일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다. 수비와 리바운드 없이는 한경기는 이길 수 있어도 시즌을 통틀어 성공하기는 어렵다. 수비는 팀 전체가 일심이 돼서 해야 한다. 한 포지션이라도 구멍이 생기면 곧바로 실점으로 연결된다. 리바운드는 수비의 끝인 동시에 공격의 시작이다. 남자 농구에서 리바운드는 4점을 의미한다. 모비스가 지금 구사하고 있는 농구가 바로 그렇다. 일부 스타들에게 집중되는 농구가 아니라 주전 5명과 식스맨들이 골고루 잘 하는 농구. 그게 유감독이 갖고 있는 농구 철학이다.

■ 투명함은 자신감이다=취재 기자로서 유 감독에게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투명함이다. 유 감독은 숨기는 게 없다. 연승을 질주하는 전술적인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감독은 입을 닫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감독은 하나 하나 있는 대로 다 털어놓는다. 그건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다. 이동훈 사무국장은 "유감독은 모든 걸 밝히고 숨기지 않는다"면서 "그건 그걸 다른 팀이 알아내 대비를 한다고 해도 그걸 또 다시 뚫을 수 있는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전에 만나도 유 감독은 그날 작전에 대해 기자들에게 다 말해준다. 혹시 상대 감독에게 정보가 새나갈 걸 걱정해 대충 얼버무리는 감독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 감독은 선수들에게도 투명하다. 모든 거 공평하게 하고 공평한 기회를 주며 모든 선수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수단을 운영한다. 선수들의 불만이 있을 까닭이 없다.

■ 성적은 리더십 완성의 요체=리더십이 아무리 좋아도 성적이 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좋은 리더십은 좋은 성적으로 꽃을 피워야한다. 감독이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해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감독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유재학 감독은 탁월하다. 유 감독은 가는 팀마다 좋은 성적을 냈다. 우승도 많이 했고 6강은 밥 먹듯 들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국가대표 감독으로 출전해 홈팀 중국에 맞서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금메달 같은 은메달을 지휘했다. 성적이 좋게 난다는 것은 대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선수단 내부적으로도 무척 중요하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니까 좋은 성적이 난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팀에서 어떤 선수가 감히 감독에게 불만을 갖겠는가. 설사 불만을 가진 선수가 나온다고 해도 그 선수 의견에 동의할 다른 선수를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그 불만을 가진 선수가 해야 할 일은 둘 중 하나다. 입을 다물고 팀에 남아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든가, 아니면 팀을 떠나든가 말이다. 공평하고 투명하고 능력 있는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좋은 성적을 계속 내고 있는 모비스. 그런 팀은 새로운 선수들이 놔도 적응을 잘 하게 되고 과도기에도,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모비스의 조직문화이며 그런 조직문화가 오래 유지된 조직에서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화와 몰입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게 모비스가 가진 힘이며 그 원천이 바로 유재학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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